(근식 전회장께서 대종회 홈페이지에 게시했던 "회장 인사말" 은 인사말씀이 아니라, 기록에 버금가는 내용으로 삭제 할 수가 없고, 영구 보전할 가치와 필요성이 인정되어 본 자료실에 옮겨 싣게 되었음을 이해 바랍니다.
(2023.04.18일 대종회 사무국장 태천(행정)올림)
대동보·인터넷족보 發刊(발간)에 즈음하여
國內(국내) 그리고 國外(국외)에 계신 순창조씨 종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인터넷족보와 책자족보 발간에 즈음하여 宗親(종친) 여러분의 건강하심과 家門(가문)에 행복이 늘 함께 하시길 祈願(기원)하는 바입니다. 微力(미력)한 本人(본인)은 종원 여러분들이 베풀어 주시는 애정과, 선조님들의 인도하심과 蔭德(음덕)으로 淳昌趙氏(순창조씨) 종중에서 6번째로 발간되는 책족보와 처음으로 만드는 인터넷족보를 발간하는 주관자로서 大宗會長(대종회장)의 임무수행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世上(세상)이 아무리 발전하고 변한다 해도 뿌리 없는 나무 없고 조상 없는 자손은 없습니다. 우리 淳昌趙氏(순창조씨)는 고려 초에 순창 호장을 지낸 趙子長(조자장)을 始祖(시조)로 하고 先祖(선조)의 토착지인 淳昌(순창)을 本貫(본관)으로 삼아 世系(세계)를 이어 현재 大宗孫(대종손) 根浩(근호:33세) 孫에 이어 範俊(범준:34세)과, 槐山門中(괴산문중) 安村(안촌)의 宗孫(종손) 範男(범남:34세)의 子 勝烈(승열:35세) 孫이 繼承(계승)하고 있습니다. 1世代를 30年으로 볼 때 우리 淳昌趙氏(순창조씨)는 一千年 以上(이상)을 이어오면서, 지금으로부터 254년 전 서기 1762년(단기 4095년)에 最初(최초) 族譜(족보)인 壬午譜(임오보)를 發刊(발간)하였으며(영조 38년), 초보 발간 후 2차 壬戌譜(임술보)는 서기 1802년(단기 4135년, 순조 2년)에 간행되었는데, 당시 槐山(괴산) 佳州門中(가주문중)의 重參(중삼:22세) 先祖(선조)가 주선하여 城宗門中(성종문중) 重春(중춘:22세), 利安門中(이안문중) 陽鎭(양진:23세) 先祖(선조)께서 淳昌(순창)에 가셔서 湖南派(호남파) 玉川趙氏(옥천조씨)와 合譜(합보)를 추진하였으나 村系(촌계)를 정확히 설정하기가 어려워 뜻을 이루지 못해 千秋(천추)의 恨(한)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始祖子長(시조자장)의 6世孫 光明(광명)의 子 文琔(문정)은 淳昌趙氏(순창조씨)이고 二子인 璋(장)을 始祖(시조)로 하는 玉川趙氏(옥천조씨)는 始祖子長(시조자장)으로부터 二世 先賢(선현:호장) 三世 溫(온:浦尹(포윤)) 四世 元軾(원식:浦尹(포윤)) 五世 仁平(인평:檢校尉大將軍(검교위대장군)) 六世 光明(광명:金紫光祿大夫門下侍郞平章事(금자광록대부문하시랑평장사), 묘는 순창사람들에 의하면 고향에 있다고 한다. 配는 정경부인 순창설씨이다)의 先祖(선조)가 있습니다.
그러나 玉川(淳昌)趙氏(옥천(순창)조씨)는 同出一系(동출일계)로써, 庚午(경오) 4月 1日 昭和(소화) 5年 3月 26日 印刷(인쇄)하고 4月 1日 發行(발행)한 文獻(문헌:平壤府(평양부) 上需里(상수리) 九七番地(번지), 著作兼發行者(저작겸발행자) 趙京鎬(조경호), 印刷者(인쇄자) 尹洙欽(윤수흠), 印刷所(인쇄소) 光文社(광문사), 發行所(발행소) 趙京鎬家(조경호가))이 槐山(괴산) 避世公(피세공)의 宗家(종가:괴산종친회장을 역임한 趙昌載(조창재) 31世孫)에 보관되어 오다가, 위 昌載(창재)의 병환이 위중하자 인계인수 도중 선조들이 대대로 이어온 서류 가운데서 발견되어 차후 효과적인 관리를 위해 2012년 11월 14일 顯祖敬拜壇竣工式 (현조경배단준공식) 전에 서울대종회 사무실에 오셔서 인계하셨습니다. 淳昌趙氏(순창조씨)대종회에서는 2012년 말 玉川趙氏(옥천조씨) 대종회장 조남현에게 수 십장을 복사하여 전달하였습니다.
또한 신해년 1971년 10월 31일 서울 도봉구 우이동 최남선 묘소 앞에서 玉川趙氏(옥천조씨) 종친회장이신 조병준(조연하 전국회부의장 선친)을 비롯하여 다수 종원들과 淳昌趙氏(순창조씨)의 종친중 대종손 趙鏞樂(조용락:당시 檢事(검사)), 鍾鎬(종호:마전), 寬植(관식:품곡)께서 모임을 영원히 남기고자 관식이 친필 한문휘호 巨木長根枝葉永昌(거목장근지엽영창)이라 쓴 액자를 제작하였고, 그 당시 기념 촬영한 60여명은 대부분 별세하셨으며 현재 淳昌趙氏(순창조씨) 종중의 생존자는 팔송파 태진 종숙과 현 대종회장 本人 근식(81세로 48년 전 36세의 나이로 참석하여 현재 생존자의 證人(증인)임)이며, 그 당시 표구된 액자를 마포구 용강동 단독기와집에 傳達(전달)하였던 것이 회상됩니다. 그 기념사진도 우연히 대종회 창립 3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신 玉川趙氏(옥천조씨) 고문이시며 서예협회회장을 역임하신 南岡(남강) 趙休林(조휴림:93세)께서, 젊은 시절 玉川趙氏(옥천조씨) 병준회장 당시 사무국장을 역임한바 그 당시부터 보관 중이던 기념사진을 淳昌趙氏(순창조씨) 대종회장인 本人에게 주시어 48년 전 36세의 나이로 대종회 활동을 기념하는 인물사진의 한사람으로 本人이 남아있음을 감명 깊게 여기어 수 십장의 複寫本(복사본)을 만들어 대종회 사무실과 주변의 임원진 몇 사람이 所藏(소장)케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淳昌趙氏(순창조씨)와 玉川趙氏(옥천조씨)가 同一(동일)한 先祖(선조)의 後孫임은 이를 입증하는 충분한 자료가 있으므로 어느 누구도 부인 못할 사항입니다. 淳昌趙氏(순창조씨)는 6世 光明先祖(광명선조)의 長子 7世 文琔(문정:湖西派(호서파))이며 玉川趙氏(옥천조씨) 始祖(시조)는 2子로서 璋(장)이며 족보에 보면 初諱(초휘) 俊璋出系玉川令(준장출계옥천령) 淳昌郡(순창군) 高麗光祿大夫檢校大將軍(고려광록대부검교대장군) 守門下中謹接(수문하중근접)이라 하였으며, 淳昌郡誌(순창군지)에는 日麗之中葉(일려지중엽) 趙璋以蔭仕官檢校大將軍(조장이음사관검교대장군)으로 기록되어 있는 바, 先祖들의 官職(관직)에 따라 蔭仕(음사)벼슬을 받는 것인데, 始祖(시조)라면 蔭仕(음사)를 받을 수 없으나 6世 光明(광명) 5世 仁平(인평) 선조들의 벼슬이 大將軍(대장군)이었으므로 蔭仕(음사)받았음을 確認(확인)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淳昌(순창), 玉川趙氏(옥천조씨)는 同一(동일)한 始祖(시조) 子長(자장)의 後孫(후손)들로 同姓同本(동성동본)이기에 兩趙氏(양조씨)는 결혼을 할 수 없음은 물론, 세계 어느 곳에 있어도 같은 혈통임을 否認(부인)할 수 없습니다. 玉川(淳昌)趙氏(옥천(순창)조씨) 일부종파에서는 순창을 큰집으로 인정하는 말씀을 하시기도 합니다. 同族(동족)으로써 역사는 正道(정도)이며 後孫(후손)들에게 올바로 인지하도록 하여, 언젠가 淳昌(순창), 玉川趙氏(옥천조씨)는 대동보의 편찬을 수행하지 못해 한탄하시던 先祖(선조)들의 꿈을 이루어야만 되겠습니다.
충북 괴산군 문광면 송평리 179의6 은행정 마을 한복판에 우뚝 솟아 있는 銀杏(은행)나무는 이 마을에서 誕生(탄생)하시여 文科(문과)에 及第(급제)하시고 元(원)나라 判(판)과에 올라 高麗(고려) 忠穆王(충목왕)때 藝文館(예문관) 大提學(대제학)까지 지낸 순창조씨 8세손 趙廉(조염:시호는 文貞公(문정공), 1293~1346)께서 심은 것으로 2016년 현재 수령 700여년이 되었음에도 가을이면 수백kg의 은행을 따고 있는데, 古木(고목)의 높이는 13m 둘레 11m의 老巨樹(노거수)로써 충청북도나무(고유번호 7-9)로 지정되었습니다.
淳昌趙氏(순창조씨) 종중 모두의 마음의 고향이기도 한 이곳 은행정 뒷산(송평리 산 62)에 始祖(시조) 子長(자장)부터 10세 先祖(선조)까지 顯祖敬拜壇(현조경배단)에 位牌(위패)를 모시고 매년 음력 10월 1일 時祭(시제)를 드리고 있으므로, 언젠가는 淳昌(순창), 玉川趙氏(옥천조씨)가 함께 제사를 드리는 날도 있을 것을 믿으며, 우리 淳昌趙氏(순창조씨) 후손들이 먼저 순창에 가서 玉川(淳昌)趙氏(옥천(순창)조씨) 先祖(선조) 璋(장)~10世 元吉(원길) 墓도 함께 참배하고 시제에도 참석할 기회를 조속히 마련해야 되겠습니다. 眞情(진정) 지나가는 세월이 아쉽기만 합니다.
우리 선조들은 淳昌玉川趙氏大同譜(순창옥천조씨대동보)를 만들고자 하였으나 못 이룬 것이 한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마침 今年에 인터넷족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회상미디어 족보회사와 계약을 하게 되었고, 본 회사는 2014년 1월 玉川(淳昌)趙氏(옥천(순창)조씨)와 대동보 만들기로 사전에 계약이 되어 있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淳昌趙氏(순창조씨)가 인터넷족보를 만듦에 있어서 그 많은 족보회사 가운데 (주)회상미디어 족보회사와 契約(계약)을 체결하게 된 것은 先祖들의 인도함으로 예상되어, 합보는 못하였지만 함께 出刊(출간)하여 (各)大宗會에서 兩 宗中(종중)의 족보를 豫置(예치)하면 파보가 모여 있으니 大同譜(대동보)를 이룬 것과 같은 기쁨이 있으리라 예상됩니다.
요즘 後孫(후손)들은 인터넷을 통하여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여 전 세계와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있기 때문에, 이미 앞서가는 종중에서는 인터넷족보를 만들어 사용 중에 있으며, 그 수가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인터넷족보는? 첫째, 세계 어느 곳에서나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를 통하여 이름을 입력하고 인증을 받는 즉시 자기의 族譜(족보)를 찾아 쉽게 열람할 수 있으며 둘째, 실시간으로 자기의 直系(직계)를 볼 수 있으며 셋째, 영정, 가족사진, 묘소사진 등 다양한 사진을 族譜(족보)와 함께 열람할 수 있으며 넷째, 책자족보에 싣지 못한 개인 상세 이력을 登載(등재)할 수 있고 다섯째, 파별·세별 인구통계, 배우자 통계, 이름 통계 등 다양한 자료의 檢索(검색)기능도 있어 한자와 족보를 잘 모르는 後孫들도 선조님들의 훌륭한 업적과 행적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특별히 이번에 구축하는 인터넷족보는 淳昌趙氏(순창조씨) 종중에서 처음으로 발간하는 족보인 만큼 각 문중 편찬위원님과 宗員間(종원간)에 우의를 돈독히 하여 한 분도 빠짐없이 수단을 작성하시고, 각 문중에서는 統合(통합) 收集(수집)하여 신속히 대종회 편찬위원회로 보내 주심으로써 가급적이면 금년 내로 인터넷족보가 완성되길 꼭 부탁드립니다.
이번 인터넷족보 성공 여부는 얼마나 많은 宗員(종원)들이 참여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핵가족화와 도시화로 인하여 종원분들의 이사가 잦고 연락처 變更(변경)이 많아 주소파악과 연락이 무척 어렵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족보에서는 大宗會(대종회)에 연락을 주시면 확인 즉시 컴퓨터에 수정·변경할 수 있으므로, 우리의 젊은 후손들이 마음대로 검색하고 즐겨 볼 수 있도록 하여 淳昌趙氏(순창조씨) 종중의 무궁한 발전과 인재등용에 一助(일조)할 수 있습니다. 전세계 어느 곳에서든 淳昌趙氏(순창조씨) 종원이면 홈페이지주소( www.sunchangcho.com)를 입력하여 컴퓨터로 온가족이 함께 族譜(족보)를 보심으로써 인터넷족보발간이라는 역사적 중요성은 물론 淳昌趙氏(순창조씨)의 뿌리와 발전과정을 認識(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순창조씨는 한 가족이며 한 뿌리에 共存共生(공존공생)하는 하나의 혈통으로 계승 발전해왔으며, 후손들에게 전수해온 根本情神(근본정신)은 충과 효와 禮儀凡節(예의범절)입니다. 우리는 崇祖睦族(숭조목족)의 정신교육으로 이를 昇華(승화)시켜 子子孫孫(자자손손) 萬代(만대)까지 영원한 순창조씨 종원으로써 긍지와 사명감을 갖고 길이 繁昌(번창)하시길 기원합니다.